17화.  대량 학살

조회수 18 15세 이상 이용가 등록 2026.09.02
고양이 여인숙

17화. 대량 학살


뉴욕 전역에서 콜럼비아 대학 다음으로 가장 아름답다는 코넬 의과 대학의 부속 병원으로
있는 코넬 메디컬 심장 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웰페
어 섬을 넘어서 해협으로부터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에 고풍스러운 대학의 담쟁이들이
바람에 우르르 몸부림치고 있었다.
코넬 대학의 심벌로 세워진 고딕 건축탑을 차는 비틀거리며 지나고 있었다. 전 미국에서
5 위의 장서를 자랑하는 웅장한 도서관을 꺾어들자 저멀리 메디컬 센트의 불빛이 우아하
게 비치기 시작했다.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살아만 있어다오 . 니가 아무리 악마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도 이번에는 널 놓치지 않을 거야 . 아니, 설사 니가 그 고양이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
더래도 난 절대루 널 버리지 않을 거야 .
메디컬 센터의 입구로 다가갔을 때 이미 사태는 심상치 않은 전국으로 치닫고 있음을 곧
알 수가 있었다. 방균복을 머리까지 껴입은 남자들이 총을 들고 입구에서부터 쭉하니
늘어서있었다. 랜돌프가 그들 중 한 명에게 신분증을 제시하자 군인들이 잽싸게 길을
터주었다.
화일 뭉치를 든 일련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끝도 없을 것 같은 병실의 복도를 따라
급박하게 걸어가는 학생들의 꽁무니에 붙어 난 후들거리는 걸음을 옮겨야 했다. 랜돌프
는 계속해서 지껄이고 있었다.
[ 사태가 이쯤되다보니 대학에서도 더 이상 비밀로 방치할 수 만은 없었습니다 .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 된 것은 지난 주 1차 발작직후였습니다!!]
대체 이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국방부 장관에게까지 보고될 정도로 은주가 무슨 끔
찍한 외계인으로 변신이라도 했단 말인가?!!
[성은주씨로부터 아홉번째의 희생자가 돌발하자 마침내 국방부에서는 제 1 종 격리령을
내렸습니다!!]
복도의 중간 메인 데스크에서 다시 왼쪽으로 돌자 꽤 큰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그 엘리
베이터조차도 두 명의 군인이 지키고 서있었는데 랜돌프의 신분증을 보곤 무전기로 누군
가에게 급히 연락을 취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엘리베이터의 문이 스르르 열리고 .
그 열려진 엘리베이터는 나를 조소하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뫼비우스의 지옥을 잘도 빠져
나갔다고 생각하겠지만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야라고 마구 소리치는 것 같았다. 문이 닫히
고 엘리베이터는 뱀살처럼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B1 B2 B4 B8 .
마침내 엘리베이터는 지하 13 층에서 스르르 멈추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아,
내 온몸으로 그 살육의 들판에서 불어오던 비릿한 내음이 일제히 몰려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로부터 무거운 첫 발을 내딛기가 무섭게 요란하고 어지러운 싸이렌 소리가 끝
없이 에코음으로 둔갑하며 공명되고 있었다. 길다랗게 뻗은 협소한 복도의 천정 가장 자
리에 위치한 붉은 비상등이 쉴새없이 번쩍거리고 그 빛의 어지러운 운동은 사면이 투명한
철강으로 이루어진 복도의 표면 위로 비추어져 완벽한 공포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었다
. 사면의 벽 위로 스쳐 지나가는 나의 모습들이 희끗이며 기형적으로 비쳐지고 있었다.
그 복도의 끝에서 다시 수십 명의 군인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비명과 절망
에 가득 찬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
제이슨 중위!! 문을 열지 마!!
저 개 같은 것을 죽여버려야 합니다!!
문을 열지 말랬잖아!!
갑자기 앞서가던 랜돌프가 내 어깨를 잡으며 말한다.
[들어가시기 전에 제겐 말씀해 주십시요 . 대체 성은주씨와 무슨일을 겪었던 것입니까?
]
난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그 콧털을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뿌리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
갔다. 그때 군인들의 무리 속에서 한 여자가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그녀도 랜돌프의 팀
원 중 한 사람인 듯했다. 그녀가 급박하게 입을 연다.
[이건석씨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발작이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다가갈수록 그 비명 소리는 더 참혹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마구 뛰어가기 시작
했다. 랜돌프와 연구팀 학생들도 뛰기 시작했다.
복도의 끝에 위치한 무슨 실험실 같은, 원형의 구멍이 양쪽에 난 두꺼운 철문 앞으로 우
리가 다가가자 몇 명의 군인들이 앞을 막아섰다. 랜돌프가 재빨리 군인들의 대장쯤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이분이 이건석씨라고 하자 대장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칙하며 두터운
침을 바닥에다 뱉어낸다.
그리고 대장이란 남자가 부하에게 고개짓으로 신호를 한다.
부하중 한 명이 문 옆의 스위치를 올리자 천정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실로 소름끼치는 비
명소리들이 튀어나오며 좁은 지하실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아아악 !! 이 ;년!! 내 팔!! 아아악!! 중대장님!! 중대장님!! 아아아악!! .
그렇다. 이곳은 새로운 지옥의 시작이었다. 그 성황당의 확성기를 통해 공지사항을 알리
며 들려오던 섬찟한 괴물의 목소리가 여전히 더 참혹한 삼베고름을 동여 메고 하얗게 웃
으며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곧이어 등짝이 말라붙을 정도의 섬찟한 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벌겋게 충혈이
된 중대장이란 남자의 눈에서 불똥이 튀고 있었다.
[건석씨 건석씨 약속했잖아요 . 날 버리지 않겠다고 .]
[아 은주 .]
갑자기 무거운 돌이 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압력이 전해져 왔다.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절규하듯이 외쳤다. 군인과 랜돌프는 지금은 안된다고 나를 말리고 난 어린애처
럼 떼를 쓰고 있었다.
[은주, 내가 왔어!! 내가 왔다구!!]
[이선생님, 지금 안에선 엄청난 살육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위험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날 들여보내줘!!]
밖에서 우리가 한참 이런 실갱이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나고 있
었다. 중대장이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일순간 그 난장판 같던 복도에 적막한 고요가
흐르고 있었다.
뿌지직 .
뿌지직 거리며 무엇인가 부숴지고 있는 소리가 가느다란 실지렁이처럼 지하실을 헤엄쳐 다
니고 있었다.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가던 우리 모두는 거의 동시에 입을 벌린 채 다물
지를 못했다. 바로 앞의 20센티도 넘는 알미늄 문이 앞으로 조금씩 돌출하고 있었기 때
문이다.
그 돌출의 강도는 점점 더 심해져 갔다. 동시에 우웅하는 진동음도 더 커지고 있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자 40대의 지휘관은 땀에 젖은 얼굴로 고함을 질러댔다.
[모두들 물러나!!]
병사들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제이슨 중위라는 남자는 불꽃같은 눈으로 부풀
어 오르는 철문을 노려보며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지휘관이 제이슨에게 다가간다.
[이 개새끼!! 내 말이 들리지 않아?!! 뒤로 물러나라고 했잖아!]
[안에선 부하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때 부하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아악 중대장님!!
동시에 우리 모두가 문을 바라볼 때였다. 쾅하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철문이 휴지조각처
럼 튕겨져 나오면서 제이슨 중위의 전면을 강타했다.
넓은 철판에 휩쓸린 제이슨이 휘청하며 쓰러지면서 동시에 날카로운 칼날의 쇠조각이 중
위의 방균복을 가르며 살을 갈라낸다. 찢겨져 나간 살점 사이로 분수같은 피가 뿜어져
나온다. 문짝이 떨어져나간 개방된 실험실 안으로부터 엄청난 바람과 함께 죽은 병사들
의 잔해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아아악!! 참혹한 비명들이 그 좁은 지하에 폭풍처럼 메
아리쳤다.
병사들의 방균복 위로 동료의 넓적 다리가 쿵하고 덮쳐왔다.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나려
던 제이슨 중위의 얼굴로 내장의 덩어리들이 왈칵하며 감아든다. 중위는 천천히 그 내
장들을 손으로 떼어내며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멈추지 못해!! 이 썅놈의 새끼야!!]
이성을 잃은 지휘관이 제이슨에게 욕설을 퍼붇는다. 그러나 이미 실험실 안으로 들어간
제이슨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지휘관이 잽싸게 실험실 안
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중위의 어깨를 잡는 동시에 철컥하는 소리가 들린다. 제이슨
의 옆 머리에다 총구를 겨눈 지휘관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중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머리통을 날려버릴 거야!!]
그러나 지휘관의 엄포에도 아랑곳 않고 제이슨은 피가 철철 흐르는 배를 손으로 짓누르며
천천히 전방을 바라본다.
난 재빨리 그 무수한 바람과 굉음을 헤치고 실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거대한 정
방향의 연구실이었는데 무수한 컴퓨터의 콘테이너들이 사면을 둘러싸고 길길거리며 신호를
주고 받고 있었고 10M 정도의 높다란 천정 가까이론 두 개의 둥근 원형 고리가 쉴새없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서 우선 본 것은 그 돌아가는 원형의 고리 속에서 둥둥 든 채 하얗게 웃고 있
는 은주였다. 은주라고 하기엔 그 모습은 너무도 처철했고 혈흔이 더덕더덕 말라붙은 산
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번쩍이는 그녀의 눈빛은 내 영혼을 통채로 빨아들일 듯이 장엄했다
.
그녀가 우하하하 웃어 제친다.
이미 피가 무릎까지 차올라서 첨벙 첨벙 소리를 내는 방균복을 이끌고 제이슨이 은주에게
로 걸어갔다.
그리고 제이슨이 총을 꺼내어 여전히 나약한 인간들을 향해서 마음껏 비웃고 있는 정교
한 기계들을 향해 발사했다. 퍼벅하는 불꼿과 함께 동시에 지휘관의 총애서도 불이 뿜어
나왔다. 제이슨의 어깨에 커다란 총구멍이 뚫리고 있었다. 제이슨이 자신의 어깨를 잡
고 슬픈 눈으로 중대장을 바라봤다. 그가 중대장을 향해 고함을 지른다.
[엿 같은 특별 지령입니다!!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저 괴물을 지키라구요!! 정말,
정말 개 엿 같은 헛소립니다!! 저 괴물은 진작부터 가루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닥쳐!! 우린 군인이고 위에서 시키는대로 하면 그만이야!!]
[중대장님과 나는 부하들을 죽였다는 엿같은 악몽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 겁니다!!]
동시에 제이슨이 휙 돌아보면서 천정에 메달린 은주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내가 말리
기도 전에 그 총알은 잽싸게 날아가서 정확하게 은주의 오른쪽 어깨 부위에 가서 박혔다
. 블렛 형식에 매그넘의 파워를 장착한 제이슨의 총알은 퍽하는 소리와 함께 은주의 어깨
를 반쯤 너덜하게 잘라냈다.
뒤로 튕겨나가면서 잠시 굳어 있던 은주가 다시 천천히 앞으로 고개를 숙였다. 뼈가 허옇
게 보이는 어깨의 벌어진 살점을 통해서 노오란 빛들이 새어나왔다. 동시에 급속하게 상
처가 아물면서 은주가 거대한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은주가 두 팔을 벌리며 제이슨을 부르고 있었다. 순간 제이슨이 휘청하며 균형을 잃는다
. 제이슨의 몸이 무중력 상태에 처한 우주인처럼 공중으로 가볍게 떠오른다. 방균복에 잔
뜩 고여있던 피가 거꾸로 쏟아지면서 제이슨의 얼굴을 붉게 채색하고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염동력이었다. 지휘관이 제이슨을 잡으려고 다가갔으나 이미 중위의 몸둥
아리는 은주의 바로 코 앞까지 가 있었다. 은주가 제이슨을 바라보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라구 ?!!]
은주의 면상에 제이슨이 피가 섞인 침을 뱉는다.
[엿 먹어라!! 이 ;년!!]
동시에 은주의 손이 제이슨의 아랫배 속으로 푹하고 들어갔다. 제이슨이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시에 지휘관이 비명을 질렀다.
안돼!! 안돼!! 제이슨!!
순식간에 제이슨의 등으로 관통한 구멍을 통해 원을 그리며 돌아가던 실험 기구의 빛들
이 번쩍하며 쏟아져 나왔다. 그 빛은 일직선을 그리며 바로 아래에서 넋을 잃고 서있는
지휘관의 면상 위로 박혀져 갔다. 그것도 잠시뿐 어느 순간 폭포수 같은 피들이 그 구
멍을 통해 밖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지휘관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연구실 안은 삽시간에 피로 범벅 되면서 모든 병사들은 분노와 광기로 치를 떨며 포효하고
있었다.
중대장님, 중대장님!! 죽입시다!! 저 잡년을 죽이자구요!!
피에 젖어 부들부들 떨던 지휘관이 모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제히 사격해!!
동시에 광분한 병사들의 M 16 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동으로 셀렉트 키가
놓여진 M 16은 한편의 무아지경의 시나위와도 같았다.
퍼버버버벅 .하는 소리와 함께 은주의 배에 벌집같은 구멍이 나는가 하면 은주의 머리
한쪽이 벗겨져 나가는 것도 보였다.
안돼!! 내가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은주가 고개를 휙 돌리며 컴퓨터 터미널들을 바라봤다. 빛을 잃어가던 터미널들
의 스위치가 미친듯이 교대로 켜지면서 일제히 총천연색의 신호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은
주를 둘러싼 그 원형의 고리들이 세차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이크, 빨리 전원을 차단시켜!!]
문 쪽에서 이 상황들을 바라보고만 있던 랜돌프가 소릴 질렀다. 마이크라는 흑인 청년이
터미널로 뛰어가고 있었다. 마이크가 고개를 숙이고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전원 박스의
두껑이 열리고 있었다.
[전원이 내려가질 않아!! 아아아악!! .]
마이크가 본 것은 일종의 순간적인 환영이었다.
어두운 전원 박스의 저 안 쪽으로부터 쒸이익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노란 불덩어리의 형체를 한 고양이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신비로운 불덩
어리로 다가오던 고양이가 마이크의 손 바로 앞에서 촤악하고 이빨을 드러냈다.
그 날카로운 이빨은 덥썩하고 마이클의 손목까지 삼키고 있었다.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전원 박스로부터 손목이 잘려져 나간 팔을 꺼내던 마이크가 하얀 눈동자를 만들어내며
거품을 내고 있었다.
은주를 둘러싼 원형의 고리들은 이제 아예 보이지가 않았다. 급속한 회전력과 함께 엄청
난 자력을 발휘하며 실험실 안을 소용돌이 치는 블랙 호올로 만들고 있었다. 그 폭풍의
중심부에서 은주가 요란하게 웃고 있었다.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에서 퍽퍽하는 소리
와 함께 전구란 전구는 모조리 터져나가고 있었다. 불이 꺼진 실험실 안은 옅은 연두색
의 비상등만이 희미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그 어두운 공간 안으로 들리던 모든 비명들은
차라리 귀를 막아야 할 악몽의 연속이었다.
난 눈을 감았다. 내 몸이 공중으로 높이 치솟아 그렇게 원을 그리고 있었다. 병사들의 비
명소리, 내 얼굴에 날아오는 피의 잔재들 살점들이 하얗게 춤을 추며 마치 살아서 어디
론가 마구 춤을 추며 날아가고 있었다.
왜 이다지도 꿈은 끝나지 않는가?!!
어둠 속에서 그리고 비명 속에서 아련한 은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
내가 천천히 눈을 떴다. 식지 않은 피가 은주의 머리카락을 씻기면서 그렇게 끝없이 물빛
블라우스를 담그며 타내리고 있었다.
그 피의 홍수 속에서 은주가 슬픈 눈으로 날 바라봤다. 은주의 앞까지 떠올라간 난 천천
히 손을 내어민다.
[으 은주 이래선 안돼 . 이래선 안돼 .]
내눈엔 눈물이 맺혀갔다.
은주가 한 손으로 중대장이란 남자의 목을 움켜 잡은 채 날 보고 웃고 있었다.
바들바들 떨며 떨어지던 그 석양의 그림자 뒤에서 내 사랑하는 은주는 웃고 있었다. 남은
학기를 몰래 다니겠다고 과외를 하고 돌아오던 신촌의 사거리에서 은주가 심장을 잡고 발
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뛰어가서 은주의 손을 잡고 머리칼을 쓸어넘길 때도 내 가련
하고 착한 은주는 저토록 슬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은주가 가뭄의 논바닥처럼 빠짝 가라진 입술에 피를 적시며 다시 말한다.
[날 날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
[그래 사 랑해 .]
은주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
[거짓말!!]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내 면상 위로 뜨뜻한 것들이 와락 쏟아진다. 내가 천천히 손으
로 그것을 걷어 냈을 때 내 손 위로 보여지는 것은 뇌수였다.
아직도 너덜하게 붙어 김을 피워내는 허연 이물질은 은주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튀어나온
것들이 분명했다.
은주에게 목이 잡힌 중대장이 미이라처럼 하얗게 질려가며 마지막으로 은주의 머리통에다
총을 갈긴 것이다.
은주의 목이 끼이익거리는 볼트 조이는 소리를 내며 중대장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
고 구멍난 은주의 머리칼 사이로 노오란 빛들이 날카롭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 빛들은
일제히 중대장의 두 눈을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숨이 막혀 툭 튀어나온 중대장의 두 눈 중앙으로 빛들은 집중적으로 파고 들고 있었다.
눈을 감아야 했다.
잠시 후 요란한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고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 예의 성황당 나무 위에서 보았던 그 환상적인 빛의 예술들이 찬연하게 재현되고 있
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많은 고양이들이 빛에 가까운 군인들의 사체에 달라붙어 잔인하게
그들을 뜯어 먹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욕심과 탐욕으로 찌들어 자신의 먹이에 손을 대
는 동료들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지옥 .
완벽한 지옥이었다.
은주를 바라봤다. 그녀가 날보고 비시시 웃고 있었다.
내가 얼핏 바라본 곳엔 마이크란 흑인의 목이 몸체로부터 이탈한 채 재빨리 소용돌이 속
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살육의 잔해들은 어둠 속에서 원을 그리며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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