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광추면 통과

조회수 15 15세 이상 이용가 등록 2026.09.02
고양이 여인숙

14화. 광추면 통과


[닫히면 안돼 . 닫히면 안돼 .]
은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내가 은주의 시선을 따라 전방을 바라보았다. 동시
에 날 공격하던 고양이들이 공격을 멈추고 크르릉거리며 밖으로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우주였다. 일종의 초슈퍼 아이 맥스 스크린이 하늘과 맞닿아 있었고 그 스크린
은 완벽한 고화질의 입체적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는 살아 있는 일찌기 공상과학 영화에서
나 보아오던 우주의 광대함을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었다. 다만 수없이 반짝이는 행성이
나 별들 대신 태고로부터 이제까지 이 지독한 악령들에 의해 희생당한 수없는 인간들의
혼령이 정말 별처럼 무수하게 떠있었다.
그들은 목이 잘리어져 나간 채 떨어져 나간 살점과 이탈된 자신들의 몸체를 재조립하려고
한결같이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이 지독한 소음들은 나의 영혼을 거대하게 뒤
흔들었고 머리가 부서질 것 같았다. 져니의 주인이었던 그 박사는 이 소리의 파장을 추적
해 온 게 틀림이 없는 듯 했다. 버스의 구석에서 이제 마지막으로 숨을 헐떡이던 져니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무수한 혼령들 가운데서 자신의 주인을 찾아내곤 허공을 향
해 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 가시를 찾아가서 찔려 죽으면서 마침내 가장 고운 소리
를 내며 죽어간다는 가시나무새보다도 더 처연하고 고결한 울음소리를 져니가 내고 있었
다.
버스는 미친 듯이 광추면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얼굴 전체에 깊은 홍조를 띄고 이제 최후
의 선택 앞에서 부푼 가슴을 마구 쿵쾅이며 버스를 광추면으로 모는 은주를 바라보는 순
간 내 뇌리 속에 노도와도 같이 밀려오는 의심이 일어났다.
그때였다. 끼이익하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버스가 급정거하면서 버스 안의 모든 것들이
마구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내가 은주에게로 달려가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던 것이다.
버스가 휘청하면서 한 바퀴 돌아가고 있었다.
버스 안의 고양이들과 지붕 위에 매달려 있던 고양이들이 일제히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동시에 입체로 이루어져 있던 줄로만 알았던 광추면의 표면에 닿은 고양이들은 퍽퍽하
는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튀겨지는 것이었다. 마치 여름날 식당에 설치되어 있는 전자유
인기에 달라붙어 타죽는 벌레들처럼 아주 기분 나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SFX
기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기에 근사한 체현(Materialization) 단계로 변화하는데 고양
이들의 공동(空洞;cavities)들이 출몰하면서 최후의 발악을 하는 그들의 표정이 실로
끔찍하기만 했다.
[무슨 짓이예요?!!]
은주가 나를 불꽃 같은 눈으로 바라봤다.
[말해봐!! 넌 누구야!!]
은주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옅게 떨었다.
[지금 그런 말할 때가 아네요!! 시간이 없단 말예요!! 곧 닫히고 말아요!!]
[말해봐!! 누구냐고 물었잖아!!]
내가 눈을 부릅뜨며 고함을 질렀다.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예요!! 은주라고 했잖아요!!]
[웃기는 소리 마 . 내가 장님인줄 알아?!! 지금까지 내가 본 건 뭐야!!]
은주가 이번에는 다급해졌는지 날 타이르기 시작했다.
[건석씨 제발 믿어줘요 이제 이 문만 통과하면 모든 게 분명해져요!! 그러니 제발 .
]
[뭘 믿어달란 말야?!! 저 광추면인지 뭔지를 통과하고 인간세계에 나가서 무슨 짓을 하려
는 거야?!! 그리고 나는?!! 난 어떡하란 말이야?!! 평생을 이 지겨운 기억 속에 갇혀서
널 의심하면서 널 증오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란 말이야!!]
은주가 잠시 나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울
먹이며 말했다.
[우린 우린 타협을 했단 말예요 .]
[무슨 개소리야?!! 뭘 타협했단 말이야!! 말해봐!! 넌 누구야? 은줄 은주를 어떻게 한
거야?!! 니가 죽인 거야!! 그 불쌍한 은주를 니가 죽인 거야!!]
은주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요 . 제가 죽였어요 . 그러니 빨리 저 문이 닫히기 전에 빨리 가세요 . 제발 빨
리 . 이런 기회는 언제 또 올지 몰라요 . 오늘이 지나면 당신을 더이상 지켜줄 수 없어요
.]
[은주를 버리곤 갈 수 없어!!]
은주가 나를 휙 쳐다봤다.
[이 더러운 인간!! 날 더러 어떡하란 거야?!! 너한테만 사랑이 있고 난 휴지조각인줄 알
아?!! 니가 꿈꾸던 은주나 니가 악몽처럼 여기는 은주나 둘 다 널 죽도록 사랑했어!! 뭘
더 바라는 거야?!! 이제부터 이제부터 내겐 사랑이 주는 천국 같은 모습이란 없어!
! 모두가 그래 모두가 지옥이 될 거야!!]
은주가 나를 쳐다보며 눈물을 쓰윽 닦는다. 그리고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뒤로 불끈
쓸어올리며 내 어깨를 툭 치며 나를 스쳐지나간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혼동과 절망이
있을까? .
내가 천천히 그녀를 바라본다. 다 부서진 버스의 입구로 간 은주가 천천히 날 쳐다봤다
. 그리고 옅게 웃으며 내게 마지막으로 말을 한다.
[절대 믿지 말아요 . 세상에 나가서 만나는 은주나 그 은주가 싫증이 나서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의 은주나 둘 다 절대로 믿지 말아요 . 지금부터 당신의 은주는 당신의 그
잘난 불신과 함께 타죽고 없어질 거예요 .]
내가 비틀거리며 손을 내밀 때였다. 은주의 온몸에서 파아란 빛이 나고 있었다. 은주가
나를 보며 조용히 웃는다. 아, 그래 저 미소 은주야 바보같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 은주의 몸에서 나던 빛은 차츰 붉은 색으로 변하더니 마침내 은주의 몸에서 불꽃
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채 뭐라고 손을 내밀기도 전에 은주는 한덩이리의 불꽃이
되어 어두운 밤하늘로 사라지고 있었다.
내가 은주로부터 돌아서서 광추면을 바라보았을 때 광추면 역시도 이제 빛을 잃으며 희미
해져 가고 있었다. 난 일단 버스의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기어를 1단을 넣고 잠시 한없
는 갈등을 했다.
그래, 이젠 늦었다. 방금 은주의 말대로 어쩌면 나의 혼동과 의심 속에서 은주는 죽어 버
렸는지 모른다. 더 이상의 줄다리기는 피차에 악한 상황만을 초래할 뿐이란 생각이 엄습
해왔다.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후의 빛을 다투듯이 내뿜는 그 광추면을 향해 나의 버스는
덜컹이며 뛰어올랐다.
광추면이란 생각보다 대단한 위력의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버스가 그 표면에 닿
는 순간 엄청난 소용돌이와 함께 버스가 휘말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버스 안에 있
던 모든 물체들이 버스 밖으로 휩쓸려 나가고 있었다. 나도 빠져나가고 그 머리를 잃은
여자의 몸둥아리도 빠져 나가고 실신한 여자도 밖으로 빨려나가고 있었다 .
그리고 져니를 보았다. 인간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삶을 충실하게 살았던 그 사냥
개는 푸석푸석거리며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점점 털이 빠져나가고 껍질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구더기가 피고, 혈관이 터지고, 마침내 한 줌의 먼지가 되어서
사랑하는 주인을 찾아 먼 우주의 여행길에 오르고 있었다.
버스를 벗어나서 보는 광추면은 오직 나에 관한 기억과 추억과 아픔과 눈물과 즐거움의
과거와 현재가 한데 어우러져 서로 부둥켜 안고 원을 그리고 있었다.
스티븐 호킹의 학설은 가설이 아닌 가장 정확한 이 지옥에 관한 세심하고도 감수성이 출
렁이는 묘사였다.

[하하하 . 블랙 호올 내부를 여행하는 여행자가 시간의 재순환(再循環)에 빠져든다면 난
내기에서 이겼고 그 이긴 값으로 잡지 <프라이비트 아이(Private Eye) > 4년분이 들어오
게 될 것이다 . 물론 여행자는 불에 타서 없어질 것이므로 영원히 증명할 길은 없지만
.]

블랙 호올 속에서 모든 여행자의 <개인적 시간 관념>이 끝이 날 것이란 스티븐 호킹의 말
대로 광추면 속에서는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오직 현재의 시점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난 내 기억의 방 어디든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말은 오해의 소지가 충분한데 순차
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내 기억의 분량을 100개의 방으로 표현한다면 내 몸이 1
00개의 조각으로 나뉘어져 그 각자의 방에 이미 존재해 있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양말도 신지 않고 스케이트를 타는 아련한 동심이 있는가하면 금새라도 쥐구
멍으로 숨어들어가고 싶은 수치와 죄가 있는 방도 있었다. 지옥에서의 가장 괴로운 것은
타오르는 유황불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들이라는 토스토예프스키의 말은 얼마나 뛰어난
예지력인가?
그 허다한 방의 한 구석에 아, 놀랍게도 은주가 저만치 뛰어가고 있었다. 신촌의 도로 옆
으로 길게 뻗은 벚꽂들이 핏방울처럼 공중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나에게 무안을 당하고
망신스러워 얼굴을 가리고 책방 문을 열고 뛰어나오는 은주가 있었다.
가슴이 설레이고 있었다. 눈이 하얗게 내리는 동해안의 바닷가를 따라서 우리 두 사람이
걷고 있었고 내 표정은 마치 넋이 나간 행복의 즙이 마음 깊은 샘으로부터 철철 넘쳐흐
르고 있는 그런 표정이었다.
모닥불이 숨을 막으며 소담스레 타오르는 산장의 한귀퉁이에서 은주와 나는 처음으로 하
나가 되고 있었다. 세상은 타락하고 처녀와 총각에게 천연기념물이란 요란한 딱지가 붙
은지 오래됐지만 은주와 난 처음으로 대하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성의 에덴 동산에서 오래
토록 머물러 있었다.
나의 기억의 방은 계속해서 은주와 나를 추적해 갔다. 그 다음 해 봄, 한적한 동네의 교
회에서 젊은 전도사의 주례로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축하객이라곤 S와 나의 어머니
이기도 한 S의 어머니, 그리고 문학동우회의 회원들 몇이서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일찍부터 딴 살림을 시작한 은주의 아버지는 식이 끝나자 마자 급히 자리를 떴고 정신병원
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은주는 화장이 다 지워질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나의
부모님은 지금부턴 넌 내놓은 자식이라고 단언하며 식장엔 그림자도 비추질 않았지만
어차피 그러한 고난들이 나의 사랑을 더 확고하게 빚어주는 도공의 기와도 같다고 여겼다
.
그렇게 난 은주를 사랑해왔다. 결혼 후 그녀의 심장병은 더 심해져 갔고 의사로부터 임신
은 물론 어떠한 위험한 시도도 불가능하단 판결을 받고 난 어떠한 희생을 지불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녀의 심장을 바꿔주겠노라고 다짐하며 뉴욕의 코넬 의과 대학에 부설로 위
치한 심장 기증 센터에 끝없이 접촉을 시도해 왔다.
1년의 노력 끝에 마침내 코넬 대학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우리는 이제 떠날 준비만을 하고
있었다. 신혼의 부부가 둘 다 미국으로 출국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대사관 측으로부터 비
자 인터뷰에 미끄러지고 홧김에 출발했던 그 우연한 여행이 마침내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삼봉 해수욕장의 황혼을 맞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짓던 우리 두 사람 앞에 곧
이어 예상치도 못했던 절망과 죽음이 찾아왔다. 이 광추면이 닫히기 전에 난 이곳을 빠
져나가야 했다.
이제 저 쪽으로 눈을 돌리니 나의 아파트 방 안에 내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
이 희미하게 보였다. 내 곁에서는 S가 당황하며 간호를 하고 있었고 그는 마침내 앰브란
스를 부르기 위해 전화통을 찾고 있었다.
광추면이 웅웅거리며 이제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었다. 난 빨리 결정해야 했다. 미련없
이 나의 온전한 육체가 기다리는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고양이 여인숙에 투숙했
던 그날 밤, 대체 은주의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내고 싶었다.
그래 , 적어도 내 사랑하는 은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아야만 했다. 나의 기억
은 아주 재빠르게 그 악몽의 새벽으로 헤집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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