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그토록 오랜 不在
고양이 여인숙
11화. 그토록 오랜 不在
53년 8월 20일
전쟁의 잔흔이 남기고 간 오욕과 수치스러움은 이땅 구석
구석에 절망처럼 널리워져 있다.
우매한 인간들은 생존이란 단순한 명제 앞에서 만족할 줄
모르고 욕망의 참혹한 결과를 이렇게 부둥켜 안게 됐다.
난 떠나야 한다.
도피해야 한다. 이 모든 확정적인 논리들이 지배하는 세
상으로부터 그렇다. 나의 이 들끓는 욕구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아니 모두가 패자뿐인 이 세상으로부터의 도
피라는 단순한 욕구에서 시작된다.
53년 9월 17일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은 모두 절대적 시간의 존재를 믿
었다.
그들은 두 사건 사이의 시간 간격을 명확한 방법으로 잴
수 있고 또 그 시간 간격은 누가 재던 간에 제대로 가는
시계를 쓰는 한 똑 같다고 믿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의 시간의 개념이란 뉴튼이 나무 아래서 깨달
음을 얻는데 혁신적 공헌을 한 사과 한 알이나 아리스토
텔레스가 그토록 절대시했던 우주 안의 네 개의 원소- 흙,
공기, 불, 물에서만 통용될 뿐 빛의 속도에 가서는 여지
없이 깨트러지고 만다.
뉴턴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발표하기 이미 11년
전 내가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던 덴마크의 천문학자 오울
크리스텐센 뢰머(Ole Christensen Romer)가 목성의 위성
이 목성의 뒤로 들어가는 시각이 동일한 시간간격으로 되
풀이되지 않으며 목성의 달이 일정한 속도로 돈다는 기대
는 한참 어긋나고 있음을 주장하지 않았는가?
무너지고 깨어지는 것들 투성이다.
지난 2천년간 인간이 쌓아온 우주관의 그 높다란 바벨탑
은 반 세기도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부수어지고 재조립되
어 이젠 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으리 만큼 거대해지고 말
았다.
그럼 신은?
우주의 시계 장치의 태엽을 감고 그 시작의 방식을 선택
하는 것 또한 신의 권한이라고 부르짖던 그 선구자들은
이제 한 시대의 유물이 되고 마는가?
53년 12월 10일
무너진 서울 하늘 위에도 올해 들어 첫눈이 내린다.
어렵게 막스 보른(Max Born)의 책을 구했다. 그가 28년
노벨상을 수상한 후 괴팅겐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담은
책이었는데 그는 감히 우리가 알기로는 물리학이 앞으
로 6개월이면 끝장이 납니다>라고 피력하고 있다.
6개월은 지났지만 물리학은 끝도 진보도 아닌 그저 또 하
나의 새로운 학설을 기다린 채 숨죽이며 있을 뿐이다.
그는 계속해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우리 둘레에서 일어
나는 사건들과 우리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
있다>라는 다소 철학적인 결론을 맺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우리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비트겐슈타
인(Wittgenstein)조차도 철학에 남겨진 오직 한 가지
일이란 언어의 분석뿐이다>라고 결론지으며 아리스토텔
레스로부터 칸트에 이르는 철학의 위대한 전통성을 무참
히 몰락시키고 있는 판국에 "우리의 정체성 이란 개념
은 얼마나 피상적이고 배부른 소리란 말인가?
눈이 하얗게 소리없이 쌓이는 이밤, 난 감히 나의 결론을
내린다.
절대적 개념이란 없다.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대변자일뿐 보이지 않
는 곳에 더 많은 진실과 향락이 살아 숨쉬고 있으리라.
54년 3월 23일
그 지겹던 혹한도 이젠 기승을 한껏 숨을 죽이고 있다.
휴전이란 평화적 탈을 쓰고 그어졌던 저 단순세포의 경계
선은 올해 들어서도 무너질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모두가 내 곁을 떠나고 있다.
그토록 사랑하던 제자 K조차도 현실이 주는 기근과 저급
한 1차원적인 사랑의 꽁무니를 쫒아 내 곁을 떠나갔다.
어찌 정상적인 그의 사랑을 저급함이라고 표현하는가?
잊어야한다고 수차례 다짐하면서도 가슴 밑바닥에서는 피
가 쏟구치고 있다.
이미 늙고 지쳐버린 내 곁에는 지난 번 독일 학술회 방문
때 얻어온 져니만이 덩그러니 날 지키고 있다.
죽음 .
죽음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54년 7월 14일
모든 새로운 이론의 공적은 아이슈타인에게로 돌려지는
게 통례가 된 지금의 물리학은 쓰디쓴 내 조소를 불러일
으키기에 충분하다.
내가 보기엔 푸앵카레(Henri Poincare)의 수학적 논법이
우리를 둘러싼 비개연성의 정황들을 더 잘 해석해주고 있
건만 그의 공적조차도 아이슈타인의 한귀퉁이에 빌붙여져
치하될뿐이다.
신이 우주를 만들 때 얼마나 많은 자유를 가졌을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아이슈타인의 빛의 이론들은 얼마
나 나약하고 다분히 감상적인가?
나는 이제 나의 남은 생애의 몇 달을 그의 오만한 일반상
대성 원리들을 무참히 깨뜨리는데 바쳐질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아니 그가 가능성을 제시했던 4차원의 공
간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에 의해 쓸쓸히 무릎
을 꿇은 뉴튼조차도 내게 감사를 돌리리라.
물론 나의 새로운 이론의 출발은 아이슈타인의 특수 상대
성 이론에서 시작될 것이다.
54년 7월 30일
근세에 들어 우주관은 과거에서 미래에 걸쳐 거의 변함없
이 영원히 존속하는 우주라는 낡은 생각에서 이제 유한한
과거에 시작되었고 한정된 미래에 끝마칠지도 모를 역동
적이고 팽창하는 우주의 개념으로 대치되고 있다.
아이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암시하는 우주의 시작이
존재함과 또 아마도 종말이 있어야만 한다는 논리에 따르
자면 지금 내게 잡히는 이 파장의 현재 사건을 P라고 정
의하고 이를 중심으로 과거 광추면(光錐面)과 미래 광추
면의 원뿔의 무수한 점들을 계산해 나가면 아이슈타인이
가설로만 남겨두었던 4차원의 공간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는 확신이 들었다.
54년 8월 20일
연 현상이 신령(神靈)에 의해서 지배된다는 다소 불안하
고 음습한 사고와 관계되어 있다. 태양이 여호수아를 위
해서 멈추었다는 성경의 진술을 봐도 우주관은 오히려 인
간의 이성보다는 신과 더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이
없다.
수천년을 거쳐 진행되고 있는 버뮤다 삼각 지역의 실종들
을 사람들은 중력과 전자기력 이론에서 풀려고만 한다.
하지만 난 단언하건대 버뮤다의 그 깊고 음산한 무저갱
속에는 수없이 많은 영들의 서식처일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차원의 교차, 즉 공간과 시간의 역
학관계가 무참히 깨어지는 뫼비우스의 교차점은 버뷰다뿐
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수도 없이 많을 것이란 나
의 가설적 이론이다.
물론 우리 인간은 3차원의 세계에서만 그 존재가 가능하
게끔 신은 구조를 형성해 놓았다는 아이슈타인의 이론은
겸허하기까지 하다는 데 수긍이 간다.
만약 나의 논리대로 4차원이 이 지구상의 다른 광추면에
존재한다면 그곳의 생물체들은 얼마나 영악하겠는가라는
것이다.
인간처럼 복잡한 구조 - 우주의 법칙을 탐구하고 신의 특
성을 논할 수 있는 존재가 3차원의 세계에 존재한다면 아
마도 3차원의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생물체들은 거의 신
과 흡사하거나 아니면 신으로부터 처절하게 버림받고 추
방당한 영적 존재들이리라.
54년 9월 13일.
아, 마침내 나의 계산과 이론은 맞아 떨어졌다.
이 새로운 세계의 경이성은 정말이지 놀라운 것이다.
이곳에서는 시간의 절대성이란 개념에 종지부를 찍은 상
대성 이론조차도 우스운 국민학생의 산수시험에 불과할
뿐이다.
모든 논리가 무너지고 시공간의 경계선이 4차원이 아니라
26차원의 좌표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아이슈타인은 웃기는 작자였다.
3차원의 이면 즉, 블랙 호올 이론이 검고 먹지에 가까운
지옥이란 그의 논리는 얼마나 유치한 상상력의 부산물인
가?
이곳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천국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천국이다.
난 365일을 하루처럼 살 수있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더이상 깨어진 사랑때문에 통곡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곳에서는 더이상 어설픈 논리나 학문과 전쟁이 주는 공
포로 인해 두려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난 완전한 자유다.
일기는 그렇게 끝을 내고 있었다. 80년대에 들어 마침내 이룩했다는, 이미 살아서 물리
학의 신화가 된 스티븐 호킹의 양자(量子)이론을 이미 50년대에 알아낸 져니의 주인, 아
니 동족 상잔의 극단적 흉포 앞에서 스스로 시대의 책임을 등지고 쾌락과 안식을 찾아
들어온 한 천재 물리학자의 최후는 이곳에 도착한 그날 밤에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는 미처 이곳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기도 전에 그가 영령이라고 표현한 저 단세포적이
고 한심한 오직 피에만 굶주린 악마들에게 살점이 뜯겨져나간 게 분명했다.
분노가 가슴 가득히 밀려왔다. 져니의 주인이야 스스로 원해서 이곳을 찾아들어왔다지만
난 무엇인가? 내 인생에서 전혀 상상도 못했고 예고조차 되어있지 않은 그야말로 우연한
참상이 아닌가?
난 이빨을 깨물었다.
일기를 덮고 잠시 눈을 감았다. 난 난 빠져나가야 한다. 그때였다. 언제 깨어났는지 은
주가 그 자리에 누운 채 나를 불렀다.
[건석씨 .]
난 눈을 뜨고 은주를 바라봤다. 아직도 의심과 회의는 밑 바닥에 가득 고여 악취를 풍기
고 있었다.
[지금부터 제 말을 잘들으세요 . 오늘 밤,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고 오직 어젯밤 그 버스
에 올라타세요 . 버스를 운전하는 남자를 죽이는 한이 있더래도 반드시 그 버스를 타야
해요 .]
난 눈살을 찌푸리며 은주를 노려봤다.
[은주는? 은주는 어떻게 된 거야?!!]
이였는가는 시간이 말해줄 거예요 . 그녀 역시 영원한 삶을 원했고 난 지푸라기 만한 사
랑을 잡기 위해 우주보다 더 큰 희생을 선택한 것 뿐이예요 .]
[난 그따위 어려운 말은 몰라!! 쉬운 말로 해!!]
[무슨 말을 해야 당신이 믿을 건가요? 그녀가 원했을 뿐이예요.]
[대체 뭘 원했단 거야?!!]
난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고 마구 고함을 질렀다. 은주가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 분노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서는 내게로 다가왔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말문을 열었
다.
[나 날 원했단 말이예요!! 병신같은 난 그 부탁을 들어줬고 . 이토록 더럽고 냄새나는
이기심이 인간의 전부였다면 난 아예 선택조차 하지 않았을 거예요!!]
[거짓말 마!! 넌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니가 은주를 죽인 거야!!]
[그래!! 내가 죽였어!! 이젠 속이 시원해요?!! 난 아무리 인간이 되고 싶어도 그저 구
역질나는 더러운 짐승일 뿐이야!! 이젠 속이 시원해?!!]
은주가 눈물을 흘리며 내게로부터 돌아섰다. 그리고 붉은 황혼이 들녘에 깔리는 길쪽으
로 걸어갔다.
어느 순간에 은주가 날 한번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 온통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그
녀의 마지막 얼굴이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오직 한 가지 길 뿐이였다.
탈출!!
그렇다 오직 탈출뿐이였다.
11화. 그토록 오랜 不在
53년 8월 20일
전쟁의 잔흔이 남기고 간 오욕과 수치스러움은 이땅 구석
구석에 절망처럼 널리워져 있다.
우매한 인간들은 생존이란 단순한 명제 앞에서 만족할 줄
모르고 욕망의 참혹한 결과를 이렇게 부둥켜 안게 됐다.
난 떠나야 한다.
도피해야 한다. 이 모든 확정적인 논리들이 지배하는 세
상으로부터 그렇다. 나의 이 들끓는 욕구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아니 모두가 패자뿐인 이 세상으로부터의 도
피라는 단순한 욕구에서 시작된다.
53년 9월 17일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은 모두 절대적 시간의 존재를 믿
었다.
그들은 두 사건 사이의 시간 간격을 명확한 방법으로 잴
수 있고 또 그 시간 간격은 누가 재던 간에 제대로 가는
시계를 쓰는 한 똑 같다고 믿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의 시간의 개념이란 뉴튼이 나무 아래서 깨달
음을 얻는데 혁신적 공헌을 한 사과 한 알이나 아리스토
텔레스가 그토록 절대시했던 우주 안의 네 개의 원소- 흙,
공기, 불, 물에서만 통용될 뿐 빛의 속도에 가서는 여지
없이 깨트러지고 만다.
뉴턴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발표하기 이미 11년
전 내가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던 덴마크의 천문학자 오울
크리스텐센 뢰머(Ole Christensen Romer)가 목성의 위성
이 목성의 뒤로 들어가는 시각이 동일한 시간간격으로 되
풀이되지 않으며 목성의 달이 일정한 속도로 돈다는 기대
는 한참 어긋나고 있음을 주장하지 않았는가?
무너지고 깨어지는 것들 투성이다.
지난 2천년간 인간이 쌓아온 우주관의 그 높다란 바벨탑
은 반 세기도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부수어지고 재조립되
어 이젠 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으리 만큼 거대해지고 말
았다.
그럼 신은?
우주의 시계 장치의 태엽을 감고 그 시작의 방식을 선택
하는 것 또한 신의 권한이라고 부르짖던 그 선구자들은
이제 한 시대의 유물이 되고 마는가?
53년 12월 10일
무너진 서울 하늘 위에도 올해 들어 첫눈이 내린다.
어렵게 막스 보른(Max Born)의 책을 구했다. 그가 28년
노벨상을 수상한 후 괴팅겐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담은
책이었는데 그는 감히 우리가 알기로는 물리학이 앞으
로 6개월이면 끝장이 납니다>라고 피력하고 있다.
6개월은 지났지만 물리학은 끝도 진보도 아닌 그저 또 하
나의 새로운 학설을 기다린 채 숨죽이며 있을 뿐이다.
그는 계속해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우리 둘레에서 일어
나는 사건들과 우리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
있다>라는 다소 철학적인 결론을 맺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우리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비트겐슈타
인(Wittgenstein)조차도 철학에 남겨진 오직 한 가지
일이란 언어의 분석뿐이다>라고 결론지으며 아리스토텔
레스로부터 칸트에 이르는 철학의 위대한 전통성을 무참
히 몰락시키고 있는 판국에 "우리의 정체성 이란 개념
은 얼마나 피상적이고 배부른 소리란 말인가?
눈이 하얗게 소리없이 쌓이는 이밤, 난 감히 나의 결론을
내린다.
절대적 개념이란 없다.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대변자일뿐 보이지 않
는 곳에 더 많은 진실과 향락이 살아 숨쉬고 있으리라.
54년 3월 23일
그 지겹던 혹한도 이젠 기승을 한껏 숨을 죽이고 있다.
휴전이란 평화적 탈을 쓰고 그어졌던 저 단순세포의 경계
선은 올해 들어서도 무너질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모두가 내 곁을 떠나고 있다.
그토록 사랑하던 제자 K조차도 현실이 주는 기근과 저급
한 1차원적인 사랑의 꽁무니를 쫒아 내 곁을 떠나갔다.
어찌 정상적인 그의 사랑을 저급함이라고 표현하는가?
잊어야한다고 수차례 다짐하면서도 가슴 밑바닥에서는 피
가 쏟구치고 있다.
이미 늙고 지쳐버린 내 곁에는 지난 번 독일 학술회 방문
때 얻어온 져니만이 덩그러니 날 지키고 있다.
죽음 .
죽음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54년 7월 14일
모든 새로운 이론의 공적은 아이슈타인에게로 돌려지는
게 통례가 된 지금의 물리학은 쓰디쓴 내 조소를 불러일
으키기에 충분하다.
내가 보기엔 푸앵카레(Henri Poincare)의 수학적 논법이
우리를 둘러싼 비개연성의 정황들을 더 잘 해석해주고 있
건만 그의 공적조차도 아이슈타인의 한귀퉁이에 빌붙여져
치하될뿐이다.
신이 우주를 만들 때 얼마나 많은 자유를 가졌을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아이슈타인의 빛의 이론들은 얼마
나 나약하고 다분히 감상적인가?
나는 이제 나의 남은 생애의 몇 달을 그의 오만한 일반상
대성 원리들을 무참히 깨뜨리는데 바쳐질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아니 그가 가능성을 제시했던 4차원의 공
간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에 의해 쓸쓸히 무릎
을 꿇은 뉴튼조차도 내게 감사를 돌리리라.
물론 나의 새로운 이론의 출발은 아이슈타인의 특수 상대
성 이론에서 시작될 것이다.
54년 7월 30일
근세에 들어 우주관은 과거에서 미래에 걸쳐 거의 변함없
이 영원히 존속하는 우주라는 낡은 생각에서 이제 유한한
과거에 시작되었고 한정된 미래에 끝마칠지도 모를 역동
적이고 팽창하는 우주의 개념으로 대치되고 있다.
아이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암시하는 우주의 시작이
존재함과 또 아마도 종말이 있어야만 한다는 논리에 따르
자면 지금 내게 잡히는 이 파장의 현재 사건을 P라고 정
의하고 이를 중심으로 과거 광추면(光錐面)과 미래 광추
면의 원뿔의 무수한 점들을 계산해 나가면 아이슈타인이
가설로만 남겨두었던 4차원의 공간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는 확신이 들었다.
54년 8월 20일
연 현상이 신령(神靈)에 의해서 지배된다는 다소 불안하
고 음습한 사고와 관계되어 있다. 태양이 여호수아를 위
해서 멈추었다는 성경의 진술을 봐도 우주관은 오히려 인
간의 이성보다는 신과 더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이
없다.
수천년을 거쳐 진행되고 있는 버뮤다 삼각 지역의 실종들
을 사람들은 중력과 전자기력 이론에서 풀려고만 한다.
하지만 난 단언하건대 버뮤다의 그 깊고 음산한 무저갱
속에는 수없이 많은 영들의 서식처일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차원의 교차, 즉 공간과 시간의 역
학관계가 무참히 깨어지는 뫼비우스의 교차점은 버뷰다뿐
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수도 없이 많을 것이란 나
의 가설적 이론이다.
물론 우리 인간은 3차원의 세계에서만 그 존재가 가능하
게끔 신은 구조를 형성해 놓았다는 아이슈타인의 이론은
겸허하기까지 하다는 데 수긍이 간다.
만약 나의 논리대로 4차원이 이 지구상의 다른 광추면에
존재한다면 그곳의 생물체들은 얼마나 영악하겠는가라는
것이다.
인간처럼 복잡한 구조 - 우주의 법칙을 탐구하고 신의 특
성을 논할 수 있는 존재가 3차원의 세계에 존재한다면 아
마도 3차원의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생물체들은 거의 신
과 흡사하거나 아니면 신으로부터 처절하게 버림받고 추
방당한 영적 존재들이리라.
54년 9월 13일.
아, 마침내 나의 계산과 이론은 맞아 떨어졌다.
이 새로운 세계의 경이성은 정말이지 놀라운 것이다.
이곳에서는 시간의 절대성이란 개념에 종지부를 찍은 상
대성 이론조차도 우스운 국민학생의 산수시험에 불과할
뿐이다.
모든 논리가 무너지고 시공간의 경계선이 4차원이 아니라
26차원의 좌표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아이슈타인은 웃기는 작자였다.
3차원의 이면 즉, 블랙 호올 이론이 검고 먹지에 가까운
지옥이란 그의 논리는 얼마나 유치한 상상력의 부산물인
가?
이곳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천국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천국이다.
난 365일을 하루처럼 살 수있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더이상 깨어진 사랑때문에 통곡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곳에서는 더이상 어설픈 논리나 학문과 전쟁이 주는 공
포로 인해 두려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난 완전한 자유다.
일기는 그렇게 끝을 내고 있었다. 80년대에 들어 마침내 이룩했다는, 이미 살아서 물리
학의 신화가 된 스티븐 호킹의 양자(量子)이론을 이미 50년대에 알아낸 져니의 주인, 아
니 동족 상잔의 극단적 흉포 앞에서 스스로 시대의 책임을 등지고 쾌락과 안식을 찾아
들어온 한 천재 물리학자의 최후는 이곳에 도착한 그날 밤에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는 미처 이곳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기도 전에 그가 영령이라고 표현한 저 단세포적이
고 한심한 오직 피에만 굶주린 악마들에게 살점이 뜯겨져나간 게 분명했다.
분노가 가슴 가득히 밀려왔다. 져니의 주인이야 스스로 원해서 이곳을 찾아들어왔다지만
난 무엇인가? 내 인생에서 전혀 상상도 못했고 예고조차 되어있지 않은 그야말로 우연한
참상이 아닌가?
난 이빨을 깨물었다.
일기를 덮고 잠시 눈을 감았다. 난 난 빠져나가야 한다. 그때였다. 언제 깨어났는지 은
주가 그 자리에 누운 채 나를 불렀다.
[건석씨 .]
난 눈을 뜨고 은주를 바라봤다. 아직도 의심과 회의는 밑 바닥에 가득 고여 악취를 풍기
고 있었다.
[지금부터 제 말을 잘들으세요 . 오늘 밤,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고 오직 어젯밤 그 버스
에 올라타세요 . 버스를 운전하는 남자를 죽이는 한이 있더래도 반드시 그 버스를 타야
해요 .]
난 눈살을 찌푸리며 은주를 노려봤다.
[은주는? 은주는 어떻게 된 거야?!!]
이였는가는 시간이 말해줄 거예요 . 그녀 역시 영원한 삶을 원했고 난 지푸라기 만한 사
랑을 잡기 위해 우주보다 더 큰 희생을 선택한 것 뿐이예요 .]
[난 그따위 어려운 말은 몰라!! 쉬운 말로 해!!]
[무슨 말을 해야 당신이 믿을 건가요? 그녀가 원했을 뿐이예요.]
[대체 뭘 원했단 거야?!!]
난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고 마구 고함을 질렀다. 은주가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 분노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서는 내게로 다가왔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며 말문을 열었
다.
[나 날 원했단 말이예요!! 병신같은 난 그 부탁을 들어줬고 . 이토록 더럽고 냄새나는
이기심이 인간의 전부였다면 난 아예 선택조차 하지 않았을 거예요!!]
[거짓말 마!! 넌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니가 은주를 죽인 거야!!]
[그래!! 내가 죽였어!! 이젠 속이 시원해요?!! 난 아무리 인간이 되고 싶어도 그저 구
역질나는 더러운 짐승일 뿐이야!! 이젠 속이 시원해?!!]
은주가 눈물을 흘리며 내게로부터 돌아섰다. 그리고 붉은 황혼이 들녘에 깔리는 길쪽으
로 걸어갔다.
어느 순간에 은주가 날 한번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 온통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그
녀의 마지막 얼굴이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오직 한 가지 길 뿐이였다.
탈출!!
그렇다 오직 탈출뿐이였다.
작가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에피소드 본문 복사가 제한됩니다.